새벽 3시 항의전화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치 발전을 위해
중앙일보 중앙사보 2015.06.08
'심층진단 대한민국 국회의원' 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쾌거 연재 계속되자 의원들이 기피 편집부·그래픽팀이 지면 빛내

“주제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3월 23일 정치부 특별기획팀 첫 회의, 박승희 정치부장의 이 한마디가 ‘대한민국 국회의원 심층진단’ 시리즈의 시작이었습니다. 단 “깔짝거리는 지적하지 말고 국회의 악습을 뜯어고칠 수 있고 대한민국 정치가 바뀔 수 있게 하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5회 시리즈의 출고 예정일은 불과 2주 앞이었습니다. 그때까지 휴일 없는 야근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고, 예감은 들어맞았습니다.

 

강민석 선배를 팀장으로 강태화·현일훈·이지상 선배, 안효성 기자와 제가 한 팀을 이뤘습니다. 두 강 선배의 회의를 ‘가장’한 술자리는 거의 매일같이 이어졌고, 그 다음날이면 아이디어 수준으로 이야기한 것들이 구체적인 기획안으로 거듭났습니다. 현일훈·이지상 선배는 국회로 출근하며 일상 취재와 기획을 병행했습니다. 여야 기자 4명이 다 현업에서 빠지면 “소는 누가 키우느냐”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저와 안 기자는 현장 투입조였습니다.

 

중앙일보 정치부 특별취재팀은 치열한 토론과 취재를 거듭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과 개인 이득 추구와의 구조적 연결고리를 파헤쳤다. 왼쪽부터 강태화·안효성 기자, 강민석 팀장, 박승희 정치부장, 김경희 기자.

 

4월 6일자 1·3·4·5면에 걸쳐 1회 기사가 나가자 여기저기서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해당 의원들은 부랴부랴 해명 자료를 내거나 공개석상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모 의원은 기자에게 전화해 “지역구 예산 확보하느라 애썼다는 내용이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세게 쓸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런가 하면 별다른 해명 없이 식사 한 번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해 온 경우도 있었고요.

 

한숨을 내쉴 여유도 없이 2~3회에 대한 압박이 몰아쳤습니다. 문제는 의원들이 전화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전화를 받더라도 “기획 때문에 그러지? 난 깨끗해~”이런 반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설득을 거듭해 취재하며 꾸역꾸역 기획을 이어갔습니다.

 

4회는 의원 ‘쌈짓돈’이라 불리는 특별교부세가 실세 의원에게 쏠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 여성 의원은 신문이 배달되기도 전인 오전 3시에 기획팀에 전화해 40분 동안 항변을 늘어놨습니다. 그 시간까지 깨어있다가 온라인에 뜬 기사를 보자마자 전화한 겁니다. 역시 그 시간까지 (절대 술을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날 지면 구상을 하느라 깨어 있던 두 분의 강 선배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무리편 5회 중앙일보 생활정치지수(JPI)는 여론조사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기사엔 한국정당학회와 같이 개발했다고 썼지만 사실 저희끼리는 ‘강태화 지수’라고 부를 만큼 강 선배의 공이 9할 이상이었습니다.

 

4월 6일자 중앙일보 1면에 실린 ‘대한민국 국회의원 심층진단’ 시리즈 첫 회 기사.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기획팀 내에선 ‘그동안 쌓은 취재원 인맥이 다 헝클어지는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좀 나왔습니다. 기획팀 해체와 동시에 타 부서로 인사발령 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까지도…. 이런 우려를 극복하고 기획팀은 이 시리즈로 지난달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습니다. 물심양면으로 기획팀을 지원해주신 최훈 국장, 이정민 에디터, 박승희 부장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5회 시리즈 내내 혼신을 다해 준 편집부·그래픽팀 선배들 덕에 1·4·5면이 더욱 빛났습니다. 기획팀의 빈 자리를 메우느라 3주 동안 두 배로 일해주신 국회ㆍ외교안보팀 식구에게도 사보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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