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3월 23일 정치부 특별기획팀 첫 회의, 박승희 정치부장의 이 한마디가 ‘대한민국 국회의원 심층진단’ 시리즈의 시작이었습니다. 단 “깔짝거리는 지적하지 말고 국회의 악습을 뜯어고칠 수 있고 대한민국 정치가 바뀔 수 있게 하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5회 시리즈의 출고 예정일은 불과 2주 앞이었습니다. 그때까지 휴일 없는 야근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고, 예감은 들어맞았습니다.
강민석 선배를 팀장으로 강태화·현일훈·이지상 선배, 안효성 기자와 제가 한 팀을 이뤘습니다. 두 강 선배의 회의를 ‘가장’한 술자리는 거의 매일같이 이어졌고, 그 다음날이면 아이디어 수준으로 이야기한 것들이 구체적인 기획안으로 거듭났습니다. 현일훈·이지상 선배는 국회로 출근하며 일상 취재와 기획을 병행했습니다. 여야 기자 4명이 다 현업에서 빠지면 “소는 누가 키우느냐”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저와 안 기자는 현장 투입조였습니다.
4월 6일자 1·3·4·5면에 걸쳐 1회 기사가 나가자 여기저기서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해당 의원들은 부랴부랴 해명 자료를 내거나 공개석상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모 의원은 기자에게 전화해 “지역구 예산 확보하느라 애썼다는 내용이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세게 쓸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런가 하면 별다른 해명 없이 식사 한 번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해 온 경우도 있었고요.
한숨을 내쉴 여유도 없이 2~3회에 대한 압박이 몰아쳤습니다. 문제는 의원들이 전화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전화를 받더라도 “기획 때문에 그러지? 난 깨끗해~”이런 반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설득을 거듭해 취재하며 꾸역꾸역 기획을 이어갔습니다.
4회는 의원 ‘쌈짓돈’이라 불리는 특별교부세가 실세 의원에게 쏠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 여성 의원은 신문이 배달되기도 전인 오전 3시에 기획팀에 전화해 40분 동안 항변을 늘어놨습니다. 그 시간까지 깨어있다가 온라인에 뜬 기사를 보자마자 전화한 겁니다. 역시 그 시간까지 (절대 술을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날 지면 구상을 하느라 깨어 있던 두 분의 강 선배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무리편 5회 중앙일보 생활정치지수(JPI)는 여론조사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기사엔 한국정당학회와 같이 개발했다고 썼지만 사실 저희끼리는 ‘강태화 지수’라고 부를 만큼 강 선배의 공이 9할 이상이었습니다.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기획팀 내에선 ‘그동안 쌓은 취재원 인맥이 다 헝클어지는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좀 나왔습니다. 기획팀 해체와 동시에 타 부서로 인사발령 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까지도…. 이런 우려를 극복하고 기획팀은 이 시리즈로 지난달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습니다. 물심양면으로 기획팀을 지원해주신 최훈 국장, 이정민 에디터, 박승희 부장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5회 시리즈 내내 혼신을 다해 준 편집부·그래픽팀 선배들 덕에 1·4·5면이 더욱 빛났습니다. 기획팀의 빈 자리를 메우느라 3주 동안 두 배로 일해주신 국회ㆍ외교안보팀 식구에게도 사보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